거래시장에 투자를 시작하기까지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누구든 생각을 한다.

하지만 투자를 시작하면 낙담을 하기 시작하는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절망에 대해 눈치채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전의 행했던 모든 일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전부가 잘못될 수가 있다고? 그런 결과는 누구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떡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너무일찍 팔아버렸다던가. 자신이 매수한 후에 떡락을 해버리던가 하는 일이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 생각해 놓은 단가에 팔려고 생각을 했지만 이후에 자신이 생각한 가격보다 싼 가격에 팔아버린 것을 눈치채는 일을 얘기한다. 자신이 매수한 종목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아서 갈아탔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악수가 되어버리는 그런 일들.... 이런 주식시장의 농담들은 그런 호구들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어째서인지 나 같은 개미 투자가가 시장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것 같단 말이다. 예를 들어 미친 떡상에도 내 가사면 떨어지고, 30일간 계속 하락을 해서 손절을 하면 반드시 떡상을 하게 된다. 수백억 투자가들이 내가 가진 만 원짜리 지폐를 노리다니 이것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이 정도면 스스로가 이건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정말 병이긴 하다 바보멍청이라는 병.

그런데 바보와 멍청이는 실은 다른 것이다.

바보라는 것은 원래 IQ가 낮은 것을 가리킨다. 멍청이는 이해력이 낮고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원시인의 IQ는 결코 낮지 않다. 량치차오(중국 근대의 유명한 혁명가)의 IQ도 낮지가 않다. 하지만 원시인도 량치차오도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도 만약 시공을 초월해 그들이 지금 세상에 있다면 비트코인을 바로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그것이 바보와 멍청이의 차이인 것이다.

 

멍청이는 바보가 아니고, 미개할 뿐이다. 좋은 교육을 받고 개화(역주:개화 시대 할 때 그 개화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좋은 교육을 받았는지의 차이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8살의 원시인이 시공을 초월해 현세상으로 온후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고 치자. 거기에 고등학교 공부도 하게 되었다면 어떤 바보라도 만유인력의 법칙 정도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전양면의 확률이 같다는 사실도 어느정도는 알수 있을것이다. 더 이상 바보도 멍청이도 없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코페르니쿠스보다 소 오키오보다 똑똑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거래시장에 처음 들어온 투자가는、이론적으로 원시인이 현대의 금융시장에 들어온 것과 같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라 아직은 미개화된、교육을 만족스럽게 받지 못한 멍청이와 같이 옳고 그름을 모른다. 다른 곳에서는 옳고 그름을 몰라도 되겠지만 금융시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매번 멍청한 판단의 뒤에는 자금은 손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매우 잔혹한 일이다.

이런 일 뒤에는 대부분의 사람은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 아! 나는 이런 일과는 맞지가 않는구나", "젠장 운이 너무 나빴어", " 더 이상 나에게는 그런 운이 없어." "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일만 똑바로 하자"

특히 마지막 문구는  단지 자신의 멍청함을 변명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껏 러브레터를 받지 못한 사람이 러브레터를 받지 못한 사실에 대하여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같은 정신승리를 얘기하는 것과 같다. 마치 러브레터를 받은 사람이 천박하다고 느껴지게 말하는 말투이다.

그럼 이런 병을 어떻게 치료를 할 수가 있는가?

치료법은 이것밖에 없다. 적립투자이다!

거래시장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머리가 좋은 멍청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손해를 보고 있는것이다. 적립투자, 그것은 단순한 투자방법일 뿐만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적립이란 것은 반드시 실행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적립은 이론상 최고의 투자교육일뿐아니라 최고의 투자교육 실천의 장소이기도 했다. 머리가 좋은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적립을 계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좋은 투자 교육을 받는 것이다. 적립투자는가는서서히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결국엔 이치를 깨우친다.(어역).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증상을 알고도 치료 할 수 없다면 사람은 자신에게 좋은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있다. 거래의 실패에 대해 그들의 결론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아, 욕심 너무과했어" '탐욕'이란 한마디로 모든 것을 해석한다. - 그러나 정말로 그런 것일까?

다음과 같은 광경을 자주 볼 수있다. 어떤 투자자가 어떤 타겟을 사들였다. 매입 가격을 10위안이라치자. 이 타겟이 20 위안까지 올랐을때도 그는 팔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이 대상은 하락을 계속하고 드디어 그가 참을 수없는 가격까지 내려  버렸다. 12위안까지 떨어졌을 때, 그가 팔아다고 해도, 2위안까지 떨어졌을 때 그가 팔았다고 해도, 그는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회에서 나오는 결론은 " 내가 너무 욕심을 냈어. 왜 20 위안일때 팔지않았을까?"이다. 

 

거래시장에서는 탐욕이 보편적이고 모두가 탐욕이다.아니면 왜 시장에 왔을까? 탐욕은 죄인가? 아니다. 사람은 개념을 혼동시키는 힘이 강하다. 특히 정반대의 두 개념을 하나로 혼동시키는 힘은 막강하다. 큰돈을 벌었을 때 그들은 탐욕을 영웅심이라고 부르고, 큰 손해를 봤을 때 그들은 탐욕을 죄라고 부른다.이런 모호한 정의가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외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근본 원인은 탐욕이 아니다.원인은 명백할 것이다.

그 원인은 그 투자자가 합리적인 가격인지 여부를 판단 할 수없는 대상을 사버렸기 때문이다.

10위안일 때 그는 그 10위안가 합리적인지 몰랐고, 20위안일 때도 그는 그 20위안이 합리적인지 몰랐다.12위안, 2위안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전히 12위안 혹은 2위안이 합리적인지를 알 수 없었을것이다.

그는 대체 무엇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른바 느낌이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서 행동하고 있다. 프로페셔널한 말로 「목적지도 없이 산만하게 걷고 있을 뿐」이다.산만하게 걷기만 했을경우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스텝 밟기 운동과 같기때문에 결코 앞으로 나아갈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목적지도 없이 왔다갔다하는 사람에게도 못 미치기 때문에 그들은 스텝만 계속 밟을 뿐, 이른바 현상유지가 아니라 서서히 실패의 지옥으로 후퇴해 빠져드는 것이다.

이 바보병을, 적립투자는 왜 고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적립투자는 처음부터 거의 필연적으로 장기적으로 오르는 타겟을 록온하여 그 타겟은 BOX와 같은 기회비용을 낮춘 것이며 투자대상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신흥산업 전체의 발전에 걸고 있다.적립투자는 원래 정했던 투자대상들을 트렌드에 따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다.

즉 처음부터 구입 의사결정이 합리적이며 몇 년이 지나야, 혹은 일정한 장기의 시기가 지나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그 기간에는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높든 낮든, 오르든 하락하든 모든 가격은 합리적이다.

이 전제로 하면, 구입시의 가격이 수퍼센트 상하로 움직여도 관계는 없다.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그것은 그저 시장을 산만하게 거닐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는 소음일 뿐이니, 몇 년이 지난 후에 결과를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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